연보

HOME > 상화이야기 > 삶의 발자취를 찾아서 > 연보

이상화

우리 시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시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이다.

이상화(李相和, 1901~1943) 호는 상화(尙火), 대구 출생. 경성중학교 3년을 수료하고(1917) 그 해 강원도 일대를 방랑했다. 이상화의 작품 활동은 그가 향리 친구인 현진건의 소개로 참여한 <백조> 창간호에 "말세의 희탄"을 발표하면서 시작되었다. 그의 작품 활동은 대략 초기에는 <백조> 그룹 등과 함께 하면서 "나의 침실로"와 같은 탐미적 경향의 시를 썼으나, 1926년경을 고비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와 같은 식민치하의 민족 현실을 바탕으로 한 저항 정신과 향토적 세계를 노래했다.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역사를 바로 꿰뚫어보는 가운데 치열한 시대 정신과 따뜻한 휴머니즘 정신을 아름다운 예술혼으로 승화시킨 암흑가의 민족 시인이자 민중 시인, 저항 시인의 한 사람으로 불린다. 일제 강점기에 독립 운동과 관련된 혐의로 여러 차례 감금되는 생활을 하였다. 백기만이 펴낸 <상화(尙火)>와 고월(古月)에 16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대표작으로는 1926년 6월, <개벽> 70호에 발표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들 수 있다.

2000 ~ 현재 민족시인 이상화 생가터
  • 2009 대구광역시 중구 서문로 2가 11번지 생가터에 표징물 설치
  • 2008 6월 중앙고교 100주년을 맞아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시비 건립과 함께 명예 졸업장 수여
    대구광역시 계산동 2가 고택 복원하여 8월 12일 개관
  • 2006 3월 수성못 상단공원에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시비 건립
  • 2003 본리리 가족묘지 상화묘 앞에 묘비를 새로 세움
  • 2002 이상화고택 보존 100만인 서명 운동
  • 2001 5월 탄생 100주년을 맞아 기념문학제 거행
1990 ~ 1970 대구 두류공원에 동상
  • 1998 3월의 "문화인물"로 이상화 선정(문화체육관광부)
  • 1996 8월 15일 대구 두류공원에 동상 건립
  • 1990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1986 6월 독립기념관(목천)에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시비 건립
  • 1985 3월 <죽순문학회>에 의해 상화시인상 제정
  • 1977 대통령 표창
1950 ~ 1930 달성군 화원면 본리리 산 9번지 가족묘지
  • 1951 9월 백기만 편찬의 「상화와 고월」(청구출판사 간행)에 시 16편 수록
    10월 남산동 옛 교남학교에 상화와 고월의 첫 글자를 딴 상고예술학원(원장 마해송) 개설
  • 1948 달성공원에 해방 후 최초의 시비가 건립됨.
  • 1943 4월 25일 오전 8시 45분, 여기 있는 계산동 2가 84번지 고택에서 부인과 세 아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숙환으로 운명. 달성군 화원면 본리리 산 9번지 가족묘지에 묻힘.
  • 1941 시「서러운 해조」<문장>폐간호에 발표
  • 1939 6월 종로에서 중구 계산동 2가 84번지로 이사.
    교남학교 교가 가사 문제로 가택 수색을 당하여 자신의 시 원고와 고월 유고까지 압수당함.
  • 1937 귀국 후 곧 경찰에 구금되어 심한 고초를 겪음. 교남학교에 복직하여 교가 작사.
  • 1936 백씨 이상정 장군을 만나러 중국으로 가 남경, 북경, 상해 등지를 3개월 유람한 후 귀국
  • 1935 시「역천」(<시원>2호), 「나는 해를 먹다」(<조강>2호) 발표.
  • 1934 조선일보 경북총국 경영.
  • 1933 교남학교에 적을 두었으나 이내 사임, 「반딧불」, 「농촌의 집」 발표.
  • 1930 「대구행진곡」을 <벌건곤> 10월호에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