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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

  • 1901. 04. 05 (음력) 대구시 중구 서문로 2가 11번지에서 부친 이시우(李時雨), 모친 김신자(金愼子)의 차남으로 출생
  • 1908. 08 부친 이시우 사망, 상정 12세, 상화 8세, 상백 6세, 상오 4세
  • 1914 한문수학을 마친 후 1년간 신학문(일어, 산술, 박물 등 초등학교 과정)을 배움
  • 1915 서울 계동 32번지에서 하숙하면서 정규교육기관인 경성 중앙학교 입학
  • 1917 대구에서 백기만, 현진건 등과 «거화» 동인에 참여했다 하나 확인되지 않음
  • 1918. 03. 25 경성 중앙학교 3년 수료, 7월 강원도 일대 방랑
  • 1919 백기만 등과 대구 3 · 1운동거사 당시 학생운동 배후조종, 선전문 등 사 · 배포 등으로 활동함. 사전에 주요 인물이 검속되어 서울 서대문구 냉동 92번지 박태원의 하숙으로 피신. 10월 공주 출신 서순애(徐順愛)와 혼인

1920

  • 1922 현진건의 소개로 «백조(白潮)» 동인이 되어 나도향, 홍사용, 박종화 등과 친하게 지내면서 창간호에 시 「말세의 희탄」, 「단조」, 「가을의 풍경」 등을 발표, 도일하여 동경에 있는 외국어전문학교인 '아테네 프랑세' 입학
  • 1923. 03 '아테네 프랑세' 수료, 「나의 침실로」(«백조» 3호) 발표, 9월에 일어난 관동대지진에서 본 일본인의 학살에 분노, 이듬해 3월 귀국. 서울 가회동 소재 취운정(翠雲亭)에 머물면서 시작(詩作)에 전념. 고향 친구 박태원의 죽음을 두고 쓴 시 「이중의 사망」(«백조» 3호) 발표. 김기진 등과 무산계급 문예운동단체인 <파스큘라> 결성
  • 1925 <파스큘라>가 개최한 천도교기념관에서 문예강연 및 시낭독회에 출연하여 시 '이별을 하느니' 낭독. 8월 박영희, 김기진 등과 <카프(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발기인으로 참여
  • 1926 1926년 대표작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개벽» 70호) 발표. 카프 기관지 〈문예운동〉 주간. 「조선병」, 「겨울마음」, 「지구 흑점의 노래」, 「문예의 시대적 변위와 작가의 의식적 태도론」 등을 발표. 장남 용희(龍熙) 출생
  • 1928 독립운동자금 마련을 위한 'ㄱ당사건'에 연루되어 대구경찰서에 구금(당시 상화는 신간회 대구지회 출판 간사직에 있었다). 상화는 이 시기에 자기 집 사랑방을 '담교장(談交莊)'이라 칭하였으며, 수많은 항일 인사들이 출입

1930

  • 1930 「대구행진곡」(«별건곤(別乾坤)» 10월호) 발표
  • 1932 담교장이라 칭하던 서문로 집을 처분하고 대구시 중구 장관동 50번지로 이전
  • 1933. 08 경북지사로부터 교남학교 강사 인가(경북학비 제 449호)를 받고 근무. 담당은 조선어와 영어, 이듬해 사임. 「반딧불」, 「농촌의 집」에 이어 두 번째 창작소설 「초동(初冬)」(«신가정» 10월호) 발표
  • 1934 차남 충희(忠熙) 출생. 친구들의 권유로 조선일보 경북총국을 경영했으나 실패, 대구시 중구 남성로 35번지로 이주
  • 1935 시 「역천」(«시원» 2호), 「나는 해를 먹다」(«조강» 2호) 발표, 백부 소남 이일우 사망
  • 1936 백씨 이상정 장군을 만나러 중국행. 남경, 북경, 상해 등지를 3개월 유람한 후 귀국
  • 1937 귀국 후 경찰에 구금되어 20여 일 심한 고초를 겪음. 교남학교에 복직하여 교가 작사. 대구시 중구 종로2가 72번지로 이주
  • 1938 태희(太熙) 출생
  • 1939. 06 대구시 중구 계산동 2가 84번지로 이사. 교남학교 교가 가사 문제로 가택 수색을 당하여 자신의 시 원고와 보관 중이던 고월 유고까지 압수당함

1940 ~ 1977

  • 1940 김소운 번역의 «조선시집»(河出書房)에 「나의 침실로」 등 3편이 수록됨
  • 1941 시 「서러운 해조」(«문장» 25호) 발표
  • 1943. 04. 25 오전 8시 45분, 계산동 2가 84번지 고택에서 부인과 세 아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숙환으로 운명. 달성군 화원면 본리리 산 9번지 월성 이씨 가족묘지에 묻힘. 10월 백기만의 발의로 서동진·박명조 설계, 윤갑기 · 김준묵의 참여로 묘 앞에 ‘詩人白亞月城李公諱相和之墓’라는 비가 세워짐
  • 1948. 03 김소운 발의, 죽순시인구락부 협찬으로 3월 14일 대구 달성공원에 해방 후 최초의 시비가 건립됨. 시비에는 「나의 침실로」의 일절이 새겨짐
  • 1951. 09 백기만 편찬의 «상화와 고월»(청구출판사 간행)에 시 16편 수록. 10월 남산동 옛 교남학교에 상화와 고월의 첫 글자를 딴 상고예술학원(원장 마해송) 개설
  • 1977 대통령 표창

1980 ~ 2006

  • 1985. 03 <죽순문학회>에서 상화시인상 제정
  • 1986. 06 독립기념관(목천)에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시비 건립
  • 1990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1996. 08. 15 대구 두류공원에 동상 건립
  • 1998 3월의 '문화인물'로 이상화 선정(문화체육관광부)
  • 2001. 05 이상화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전(대구 MBC) 개최
  • 2002 이상화고택 보존 100만인 서명 운동
  • 2003 대구시 달성군 화원읍 본리리 가족묘지 상화묘 앞에 묘비를 새로 세움
  • 2004 경북 김천 직지문화공원에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시비 건립
  • 2006. 03 수성못 상단공원에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시비 건립

2008 ~ 2017

  • 2008. 02 '이상화기념사업회' 설립
  • 2008. 06. 08 서울 중앙중 · 고등학교 교정에 개교 100주년기념「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시비 건립과 함께 명예 졸업장 수여
  • 2008. 08. 12 대구광역시 중구 계산동 2가 고택을 복원하여 개관
  • 2008. 08 상화고택에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역천」 시비 건립
  • 2009 대구광역시 주구 서문로 2가 11번지 생가터에 표징물 설치 죽순문학회에서 '이상화시인상'을 이상화기념사업회로 인계 시상
  • 2014 이상화기념사업회, 중국 연변동북아문학예술연구회와 공동 '이상화문학상' 제정
  • 2017 5월 「이상화 시집」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