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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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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

대구에서 백기만, 현진건 등과 <거화> 동인에 참여했다 하나 확인되지 않음

1922

현진건의 소개로 「백조(白潮)」 동인이 되어 나도향, 홍사용, 박종화 등과 친하게 지내면서 창간호에 시 「말세의 희탄」, 「단조」, 「가을의 풍경」 등을 발표, 도일하여 외국어전문학교인 '아테네 프랑세' 입학

1923

3월 '아테네 프랑세' 수료, 「나의 침실로」(<백조> 3호) 발표, 9월에 일어난 관동대지진에서 본 일본인의 학살에 분노, 이듬해 3월 귀국. 서울 가회동 소재 취운정(翠雲亭)에 머물면서 시작(詩作)에 전념. 고향 친구 박태원의 죽음을 두고 쓴 시 「이중의 사망」(<백조> 3호) 발표. 김기진 등과 무산계급 문예운동 단체인 <파스큘라> 결성

1925

<파스큘라>가 개최한 천도교기념관에서 문예강연 및 시낭독회에 출연하여 시 「이별을 하느니」 낭독. 8월 박영희, 김기진 등과 <카프(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발기인으로 참여

1926

대표작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개벽> 70호) 발표. 카프 기관지 <문예운동> 주간. 「조선병」, 「겨울마음」, 「지구 흑점의 노래」, 「문예의 시대적 변위와 작가의 의식적 태도론」 등을 발표.

1930

「대구행진곡」(<별건곤(別乾坤)> 10월호) 발표

1933

「반딧불」, 「농촌의 집」에 이어 두 번째 창작소설 「초동(初冬)」(<신가정> 10월호) 발표

1935

시 「역천」(<시원> 2호), 「나는 해를 먹다」(<조강> 2호) 발표

1940

김소운 번역의 「조선시집」(河出書房)에 「나의 침실로」 등 3편이 수록됨

1941

시 「서러운 해조」(<문장> 25호)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