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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 (기고) ‘미즈사키 린타로’ 추모제 없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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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구 대구 수성구의원

 

대구 수성못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못의 남쪽, 식당 뒤쪽에 한 일본인의 묘가 있다. 그의 이름은 미즈사키 린타로(水崎林太郞). 여러 곳의 안내표식과 묘의 안내판에 따르면 이 사람이 수성못을 축조한 사람이다. 그는 1915년 수성면으로 와 화훼농장을 운영했다. 신천의 물이 대구부의 식수로 이용되면서, 수성들의 농업용수가 부족해지자 조선인 4명과 수리조합을 만들고 수성못 축조에 앞장섰다. 자신이 죽으면 장례는 조선식으로 하고 수성못이 보이는 곳에 묻어달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알고 보면 사실과 다른 것이 너무 많다.


미즈사키가 추앙된 근거는 2개의 신문, 1927년의 매일신보와 동아일보 기사다. 알다시피 매일신보는 조선총독부 기관지로 사시가 내선일체였고, 동아일보는 일제강점기에 친일에 협조한 신문이다. 동아일보는 그 당시에는 친일이 아닌 실제 조선인을 위한 보도를 했다는 주장도 있다.


미즈사키는 일본 기후현의 면장`읍장급 공무원이었다. 1915년 치러진 중의원 선거에서 낙선해서, 가산을 탕진한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인연이 있던 수성면으로 온 ‘개척농민’이었다. 개척농민이란 일제가 조선을 내선일체화하기 위해 조선으로의 이주를 권한 일본인 농민을 말한다. 즉 조선을 뿌리까지 식민지화하기 위해 조선총독부의 첨병 역할과 그 하부 조직으로 끌어들인 일본 농민이다.


미즈사키는 수성면의 대부호인 ‘서수인’의 도움을 받고, 화훼농장을 운영하며 6년 만에 2만㎡(6천 평)의 농장 경영인으로 성장한다. 당시 대구부에 일본인이 많이 이주해 와 10만 명에 이르렀고, 신천 물을 대구부의 식수로 이용하기 위해 상수도를 내자 수성 들녘에 농업용수가 부족해졌다. 이렇게 되자 미즈사키는 조선인 4명과 수성수리조합을 창립하고, 조합장은 진희채에게 맡긴 후 자신은 부조합장을 맡는다. 진희채는 중추원 참의와 도평의원을 지낸 부호로, 해방 후 반민특위에 체포된 대표적인 친일 귀족이다. 조합원은 436명인데, 조선인 414명, 일본인 21명, 프랑스인 1명이었다. 여기서 조선인이 대부분이란 사실 때문에 다른 식량 수탈을 위한 수리조합과 다르다는 주장도 있다.


사업비는 16만7천원인데, 동양척식주식회사에서 6만2천500원을 차입하고, 총독부 1만1천원, 도청지방비 2만원, 대구부청에서 4만원을 보조받았다. 나머지 3만3천500원은 조합원이 부담했다. 1927년 완공 후 물세는 990㎡(300평)에 연간 2원60전을 균일하게 징수한다. 그 수입이 매년 9천600원이었다고 하니, 총공사비를 17년 만에 다 갚을 수 있는 어마어마한 수익사업이었다. 물세를 받은 사실이 있는데도 조선인에게 마치 엄청난 혜택을 베풀었다는 것은 오류다. 미즈사키 자신은 1년에 물세를 8전밖에 물지 않았다고 하니, 6천 평의 지주인 점을 감안하면, 스스로 대단한 혜택을 받았다. 수성수리조합은 조합원의 분쟁(반대운동)이 없었으므로 미즈사키의 치적이 인정되지 않느냐는 주장도 있지만,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부자가 한두 번 적선했다 하더라도 높여서는 안 되는 것과 같이 일제강점기에 설령 일본인의 선행 사실이 나타났다 하더라고 검증에 검증을 거쳐야 한다.


수성못 곳곳에 자리 잡은 안내표시판은 대대적으로 수정과 삭제를 해야 한다. 미즈사키 묘의 안내판은 없애고 싶지만 이 또한 역사라고 한다면, 문구를 ‘축조의 혜택이 소수의 친일 지주에게 돌아갔다’ ‘식량 수탈의 목적도 있었다’고 병기해 놓아야 한다. 매년 열리는 미즈사키 추모제는 없애야 한다. 이는 미즈사키의 묘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목 놓아 부른 이상화 시인을 기린 상화동산 면전에 있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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