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인사말

Sanghwa Memorial Association

시민 여러분의 뜨거운 동참을 바랍니다.

상화는 1901년 음력 4월 5일 대구시 서성로 2가 11번지에서 태어났습니다. 만 18세가 되던 해인 1919년, 3.1운동을 배후 조정한 혐의로 밀정의 추정을 받다가 서울로 피신했고, 1922년 현진건 등의 소개로 《백조》 동인이 되었습니다. 1923년 프랑스 유학 준비를 위하여 일본으로 갔으나 그해 9월 관동 대지진으로 일본인들이 조선인을 무참히 살해하는 현장을 보고 돌아와 시작에 전념하였습니다.

1926년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시를 통하여 빼앗긴 조국강토에 대한 울분을 토로했고, 국민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1928년 독립자금 마련을 위하여 ‘ㄱ당사건’에 연루되어 경찰서를 오가는 험난한 삶을 살기도 했습니다.

그는 숱한 문인들이 훼절하는 가운데도 조국의 독립은 반드시 온다는 굳은 신념과 몸으로 절규하며 붓으로 시혼을 불태웠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가 그토록 바라던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하고 43세인 1943년 4월 25일 계산동 2가 84번지(현 상화고택)에서 별세했습니다.

이상화기념사업회에서는 그의 시혼을 받드는 현창사업과 상화고택 관리, 상화시인상 선정 등을 통하여 상화정신을 기리고 문학 발전에도 기여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뜻있는 사람끼리 사단법인을 설립하고 지속적으로 현창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시민 여러분의 뜨거운 동참을 바랍니다.

사단법인 이상화기념사업회 이사장 최 규 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