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들에서 민족혼을 일깨운 이상화는 누구인가?
대구에서 태어난 이상화는 한국 근대사에서 너무도 큰 업적을 남긴 위대한 인물이다.
이상화가 살다간 시대는 일제 강점기 암흑의 시대였다.
조국의 아픈 현실을 통감하며 저항정신을 시에 담아 표현한 시인이자 나라와 겨레의 고통을 해방시키고자 고뇌하고 행동한 독립 애국지사다.
이상화 시인은 험난한 근대사 속에서 준열한 자기 비판과 불 같은 저항정신으로 나라를 상실한 망국민(亡國民)들이 해야 할 책무가 무엇이며,
지조와 애국이 무엇인가를 행동으로 보여줌으로써 이 땅에도 저항문학이 존재했음을 실증한 인물이다.
그가 살다간 시대는 일제 치하로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참담한 현실이었다.
살아남기 위해 굴종을 숙명으로 알며 변절한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슬픔을 삼켜야만 했다.
이상화는 이러한 서슬 퍼런 일제 치하에서도 시대적 상황을 직시하고 조국 해방을 염원하며 울분과 통곡의 심정으로 「시인에게」, 「통곡」, 「역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해를 먹다」, 「나의 침실로」 등 혼이 담긴 보석 같은 빛나는 저항시를 남겼다. 영원한 한국인 이상화. 폭풍처럼 살다 간 43년의 생애 동안 그가 남긴 업적은 지금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로 하여금 또 다시 민족혼과 시대정신을 일깨우게 한다.
이상화의 정신을 기리고 널리 알리고자 이상화가 마지막 숨을 거둔 대구시 중구 계산동 상화고택을 2002년 대구 시민의 힘으로 지켜내 광복 63년을 맞아 2008년 8월 12일 개관하게 되었다. 시민의 숙원 사업으로 이루어진 상화고택은 역사적인 장소일 뿐만 아니라 마지막 시 「서러운 해조」를 집필한 곳이기도 하다.
현재 상화고택은 시인의 혼과 숨결을 담고 있는 상징적 공간이자 영원한 한국인 이상화의 드높은 민족정신을 이어받는 체험 교육장이 되고 있다.
또한 이상화의 정신을 선양하는 사업을 펼치는 구심점이 되고 있으며, 그를 흠모하는 발길이 끊이지 않아 대구 시민뿐만 아니라
전 국민 나아가 세계인이 찾는 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