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동상(銅像)은 1995년 8월 15일 한국예총 대구시 지회와 KBS 대구방송총국이 광복 5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향토출신의 민족시인(民族詩人) 이상화를 기리기 위해 세운것이다. 1901년 음력 4월 5일 중국 서문로에서 출생한 상화는 경성중학교를 수료하고 현진건, 백기만 등과 시집을 내면서 시작(時作) 활동을 하였다. 1919년 3.1운동 때는 대구 학생 봉기를 주도했고, 1923년에 「나의 침실로」, 1926년에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등의 저항시(抵抗詩)를 잇달아 발표하였으며, 1927년 의열단(義烈團) 이주암 사건에 연루되어 구금되기도 했다. 1943년 음력 3월 21일 43세를 일기로 수감생활 후유증이 겹쳐서 타계하였다.
1977년 대통령 표창, 90년에는 건국훈장이 각각 추서되었다.
대구광역시 달서구 두류동 산 154 / 전화번호 : 053-625-1949
서부정류장에서 두류공원네거리로 가는 33번 도로(성당로)의 좌측 두류 수영장에서 500m 거리(두류공원 인물동산 내) 서부정류장에서 버스로 5분 이후 도보로 10분
이상화는 시인으로 호는 상화(尙火)이며, 대구에서 출생하였다. 1917년 고향에서 현진건, 백기만, 이상백 등과 습작을 모아서 <거화(拒火)>라는 표제로 프린트판을 내었으며, 1922년 1월 홍사용, 박종화, 나도향 등과 함께 문예지 «백조»를 발간, 그 창간호에 「나의 침실로」를 발표했다. 이어서 「말세의 희탄」, 「가을의 풍경」 등 당시의 퇴폐적인 풍조를 나타내는 시를 쓰더니, 1926년 <개벽>지 6월호에 대표작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발표하여 신경양파에 속하는 시인으로 알려졌다. 1930년 이후로는 시를 쓰지 않았으며, 그의 시들은 백기만 편 <상화의 고월>에 실려 있고, 1948년 동향 출신 시인 김소운의 발기로 대구 달성공원에 시비가 세워졌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본리리 산 13-1
화원 교도소로 가는 버스를 타고 유천교를 지나자 마자 하차해서 길을 건너 시립 희망원, 대곡천주교회를 찾아 올라가면 주공아파트가 나온다. 왼쪽편으로 난 산길로 150미터쯤 올라가면 월성 이씨 선영 안에 상화는 잠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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