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이상화기념사업회 최규목 이사장
ㆍ2차례 옥고 치른 독립운동가·시인…생가터에 문학관 건립 추진
ㆍ29일 백범기념관서 상화·만해 등 저항시인 조명 국제학술행사
최규목 이상화기념사업회 이사장이 지난 21일 대구 달서구 두류공원 이상화 동상과 시비 앞에서 이상화 선생의 시를 설명하고 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로 유명한 민족저항시인 이상화(1901~1943)의 고향 대구에서는 1986년부터 상화문학제가 열린다. 올해로 34회째다.
상화문학제를 주관하는 이상화기념사업회 최규목 이사장(61)은 지난 21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지조를 굽히지 않은 상화 정신은 세대와 계층을 초월해 우리가 지켜야 할 정신적 자산”이라면서 “우리도 정파와 이념을 넘어 상화 정신으로 지금 이 시대의 갈등과 분열을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화기념사업회는 매년 5~6월 상화 고택과 두류공원 등에서 추모제, 이상화 시인상 수상, 시 낭송대회 등을 열며 그의 저항정신과 문학세계를 기리고 있다.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국제학술행사와 우국시인 해외 흔적 찾기를 진행한다.
오는 29일 백범김구기념관에서 ‘민족애와 시세계’를 주제로 국제학술행사도 개최한다. 이번 행사에서는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국문학) 등 국내외 석학 9명이 상화, 만해, 육사, 윤동주 등 민족저항시인 4명의 자취와 업적을 다각도로 조명한다.
최 이사장은 “국내에서 민족저항시인 4명을 대상으로 한 국제학술행사는 처음”이라며 “저항문학의 새 지평을 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행사는 만해기념관 육사문학관, 윤동주를 추모하는 종로문화재단 등 4개 단체도 함께한다.
또 하반기에는 우국시인들의 흔적을 찾아 떠나는 ‘해외 톺아보기’ 행사도 연다. 독립유공자 자손과 시민들은 8월과 11월 두 차례 3~5일 일정으로 중국 지린성 룽징과 명동촌, 난징, 항저우, 상하이 등 항일 유적지를 둘러보며 우국시인들의 나라사랑 정신을 되새긴다.
대구시에서 37년간 공직생활을 한 최 이사장은 재직 기간 대구문화예술회관 예술기획과장, 대구콘서트하우스 관리과장, 대구방짜유기박물관 소장을 지내는 등 주로 문화예술분야에서 근무했다. 그는 시인이기도 하다. 1998년 대구문학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한 그는 이상화의 생애와 시세계를 훤히 꿰뚫고 있다.
“상화는 1920년 중반까지 농민, 노동자, 도시 빈민 등 사회 빈곤층의 삶을 다룬 경향파적인 시를 발표했죠. 1926년 대표작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발표한 이후로는 줄곧 저항시를 선보였습니다.”
최 이사장은 “이상화는 1928년 항일단체인 신간회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대구 부호의 집을 털다가 적발된 이른바 ‘ㄱ당 사건’으로 구금되는 등 2번이나 옥고를 치르면서도 온몸으로 일제에 항거한 저항시인”이라고 평가했다.
올해 이사장으로 취임한 그는 상화문학관 건립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상화가 32세 때까지 거주했던 중구 성내 3동 생가터 일대 2100여㎡를 매입해 반듯한 문학관을 세우는 게 소망이다. 이를 위해 뜻있는 문인들과 대구시를 설득하느라 백방으로 뛰고 있다.
최 이사장은 “천안 독립기념관에 전시돼 있는 민족저항시인 4명(상화, 만해, 육사, 윤동주) 중 독자적인 문학관이 없는 분은 상화뿐”이라면서 “문학관 건립은 조국 독립을 위해 온갖 투쟁을 하고도 해방도 못 본 채 눈을 감은 시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말했다.
글·사진 박태우 기자 taewoo@kyunghyang.com
ㆍ2차례 옥고 치른 독립운동가·시인…생가터에 문학관 건립 추진
ㆍ29일 백범기념관서 상화·만해 등 저항시인 조명 국제학술행사
최규목 이상화기념사업회 이사장이 지난 21일 대구 달서구 두류공원 이상화 동상과 시비 앞에서 이상화 선생의 시를 설명하고 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로 유명한 민족저항시인 이상화(1901~1943)의 고향 대구에서는 1986년부터 상화문학제가 열린다. 올해로 34회째다.
상화문학제를 주관하는 이상화기념사업회 최규목 이사장(61)은 지난 21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지조를 굽히지 않은 상화 정신은 세대와 계층을 초월해 우리가 지켜야 할 정신적 자산”이라면서 “우리도 정파와 이념을 넘어 상화 정신으로 지금 이 시대의 갈등과 분열을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화기념사업회는 매년 5~6월 상화 고택과 두류공원 등에서 추모제, 이상화 시인상 수상, 시 낭송대회 등을 열며 그의 저항정신과 문학세계를 기리고 있다.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국제학술행사와 우국시인 해외 흔적 찾기를 진행한다.
오는 29일 백범김구기념관에서 ‘민족애와 시세계’를 주제로 국제학술행사도 개최한다. 이번 행사에서는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국문학) 등 국내외 석학 9명이 상화, 만해, 육사, 윤동주 등 민족저항시인 4명의 자취와 업적을 다각도로 조명한다.
최 이사장은 “국내에서 민족저항시인 4명을 대상으로 한 국제학술행사는 처음”이라며 “저항문학의 새 지평을 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행사는 만해기념관 육사문학관, 윤동주를 추모하는 종로문화재단 등 4개 단체도 함께한다.
또 하반기에는 우국시인들의 흔적을 찾아 떠나는 ‘해외 톺아보기’ 행사도 연다. 독립유공자 자손과 시민들은 8월과 11월 두 차례 3~5일 일정으로 중국 지린성 룽징과 명동촌, 난징, 항저우, 상하이 등 항일 유적지를 둘러보며 우국시인들의 나라사랑 정신을 되새긴다.
대구시에서 37년간 공직생활을 한 최 이사장은 재직 기간 대구문화예술회관 예술기획과장, 대구콘서트하우스 관리과장, 대구방짜유기박물관 소장을 지내는 등 주로 문화예술분야에서 근무했다. 그는 시인이기도 하다. 1998년 대구문학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한 그는 이상화의 생애와 시세계를 훤히 꿰뚫고 있다.
“상화는 1920년 중반까지 농민, 노동자, 도시 빈민 등 사회 빈곤층의 삶을 다룬 경향파적인 시를 발표했죠. 1926년 대표작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발표한 이후로는 줄곧 저항시를 선보였습니다.”
최 이사장은 “이상화는 1928년 항일단체인 신간회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대구 부호의 집을 털다가 적발된 이른바 ‘ㄱ당 사건’으로 구금되는 등 2번이나 옥고를 치르면서도 온몸으로 일제에 항거한 저항시인”이라고 평가했다.
올해 이사장으로 취임한 그는 상화문학관 건립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상화가 32세 때까지 거주했던 중구 성내 3동 생가터 일대 2100여㎡를 매입해 반듯한 문학관을 세우는 게 소망이다. 이를 위해 뜻있는 문인들과 대구시를 설득하느라 백방으로 뛰고 있다.
최 이사장은 “천안 독립기념관에 전시돼 있는 민족저항시인 4명(상화, 만해, 육사, 윤동주) 중 독자적인 문학관이 없는 분은 상화뿐”이라면서 “문학관 건립은 조국 독립을 위해 온갖 투쟁을 하고도 해방도 못 본 채 눈을 감은 시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말했다.
글·사진 박태우 기자 taewoo@kyunghyang.com